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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산 김씨 는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지난날 일선 김씨 평성 김씨 라고도 불리었다. 신라 대보공 김알지金閼智의 후예로 고려 삼중대광 ..




                                     

ⓘ 선산 김씨

선산 김씨 는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지난날 일선 김씨 평성 김씨 라고도 불리었다.

신라 대보공 김알지金閼智의 후예로 고려 삼중대광 문하시중三重大匡 門下侍中인 선주백善州伯 김선궁 金宣弓의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선산을 본관으로 세계를 이어 왔다.

또, 신라 열조 원성왕 김경신新羅 烈祖 元聖王 金敬信의 후예 좌복야左僕射 김한충 金漢忠의 후손인 화의군 김기 和義君 金起가 고려 말 선산으로 낙향하면서 후손들이 선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이들은 이조異祖 동본동성同本同姓이다.

                                     

1. 개요

우리나라 국내의 성씨 가운데 조상이 서로 다른 데도 불구하고, 같은 지역에 뿌리를 두고 같은 성씨를 쓰며 마치 두 집안이 동성동본同姓同本인양 오인을 받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선산 김씨 善山 金氏도 그중의 하나이다. 선산 김씨 善山 金氏는 김선궁金宣弓계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김한충金漢忠계는 남한 인구 조사에서 파악되지 않고 있으며, 다만 김한충 계열 중 일제시대에 경순왕의 8자라는 김추 金錘. 추정를 시조로 소원시켜 분적한 후손들만 집계되고 있다.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해 김선궁 金宣弓 계통을 일선 김씨 라 하고, 김한충 金漢忠 계통 중 김추 金錘. 추정를 시조로 소원시켜 분적한 계열을 들성 김씨 라 한다.

이와 같이 선산 김씨가 이조異祖 동본동성同本同姓이 일어나게 된 것은, 선산善山에 뿌리를 두면서부터이다. 선산善山의 고호가 일선一善이어서 본관을 일선一善으로 사용하다가, 조선조에 들어 선산으로 지명이 바뀌면서 혼동이 발생되었다.

                                     

2. 본관

선산善山은 본래 신라 눌지왕 때 일선군一善郡이라 하였으며, 614년진평왕 36에 일선주一善州로 승격되었다가 687년신문왕 7에 폐지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숭선군崇善郡으로 개칭했다가, 995년성종 14에 다시 선주善州로 고쳤으며, 1018년현종 9 상주의 속현이 되었다.

1143년인종 21에 일선현一善縣으로 승격되었으며, 다시 지선주군사知善州郡事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 군현제 개편에 의해 1413년태종 13에 선산군善山郡으로 되었다가 2년 뒤 선산도호부善山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896년 경상북도 선산군善山郡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통폐합에 따라 선산면, 옥성면, 도개면, 해평면, 산동면, 고아면, 구미면, 장천면, 무을면이 되었다. 1963년에 구미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78년에 시로 승격하여 분리되었다. 1979년에 선산면이 선산읍으로 승격했다. 1995년 전국 행정구역 개편으로 구미시와 선산군이 통합하여 새로운 구미시가 되었다.

                                     

3. 김선궁金宣弓 계

인구

  • 2015년 138.819명
  • 2000년 109.682명
                                     

3.1. 김선궁金宣弓 계 역사

시조 김선궁 金宣弓은 초명이 김선金宣이며, 고려조에 삼중대광 문하시중三重大匡 門下侍中을 지내고 대승大丞에 추증되었다. 선주백善州伯에 봉해지고 순충공順忠公의 시호가 내렸다.

문헌에 의하면 고려 태조가 백제를 정벌할 때 숭선嵩善. 지금의 경북 구미시 지방 전투에 병사를 모집함에 김선궁金宣弓이 고을 아전衙前으로써 응모하니, 고려 태조는 자신이 쓰던 활 어궁御弓을 하사하고 이름도 선궁宣弓이라 지어 주었다. 전쟁에서 공을 세워 시중侍中에 오르고 선주백善州伯에 봉해졌다. 선주善州는 일선一善의 고호이다. 아들 김봉문金奉文도 아버지 뒤를 이어 일선一善에서 아전衙前. 지방 지배자이 되었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관향을 일선一善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다가, 조선 태종 때 선산善山으로 개칭됨에 따라 선산善山으로 하였다. 혹칭 일선 김씨 一善 金氏라 한다.

김선궁의 순충공 신도비명順忠公 神道碑銘에도 처음 적籍을 일선一善에 두어 세계世系를 이어 왔으나, 조선 태종 때 지명이 선산善山으로 개칭됨에 따라 관향을 선산善山으로 하였다고 하였다.

14세 김제 金齊는 고려 조봉랑 지평해군사로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군청벽에 도해 벽상시 27자를 남기고 바다로 들어갔다. 이조참의에 증직되고 시호가 충개공이며 안동 고죽서원, 고창 운곡서원, 울진 운암서원에 배향 되었다.

呼船東問魯連津호선동문노연진 배를 불러 동쪽 노중련의 나루를 물으니, 五百年今一介臣오백년금일개신 오백년 고려조의 한사람 신하로다. 可使孤魂能不死가사고혼능불사 외로운 이 영혼이 죽지 않고 남는다면, 願隨紅日照中垠원수홍일조중은 붉은 해를 따라가 님 계신곳 비추리.

14세 김주 金澍는 김제金齊 아우로 고려조에 등과하여 벼슬이 예의판서로 하절사로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조선이 개국하자 서신과 의복을 아내에게 보내고 돌아오지 않았다. 선산 월암서원에 배향 되었다.

김선궁의 손자 김흥술 金興述은 삼사우윤三司右尹 김봉문金奉文의 아들로, 호장戶長을 역임하고 일파를 이루었다. 특히 김흥술의 13세손 김숙자金叔滋와 그의 아들 김종직金宗直은 가문을 빛낸 인물이 되었다.

김숙자金淑滋는 야은冶隱 길재吉再로부터 조선 성리학의 정통을 이어 받았으며, 세자우정자世子右正字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 등을 역임하고, 낙향해서는 조선 성리학 발전에 큰 업적을 쌓았다. 낙봉서원에 배향되었다.

김종직金宗直은 조선 초기 성리학적 정치질서를 확립하려 했던 사림파의 사조師祖로 공조참판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낙향해서는 성리학적 향촌질서를 수립하는 데 주력하면서,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김일손金馹孫 등 여러 제자들을 가르쳐 중앙 관료로 대거 진출시켜 사림파를 형성해 훈구파와 대립하다 무오사화를 당하여 엄청난 화를 입었다. 문충공文忠公의 시호가 내려지고, 영남 사림파의 종장宗匠이 되었으며, 금오서원金烏書院등에 배향되었다.

김흥술의 후손 김교 金嶠는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판서判書였으며, 공신으로서 선산부원군善山府院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양양공良襄公이다.

김선궁의 후손 김광발 金光發은 벼슬이 경력經歷이었으며, 일파를 이루었다.



                                     

3.2. 김선궁金宣弓 계 분파

  • 문대공파文戴公派: 18세 김응기金應箕,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우의정 좌의정 시 문대공, 서원 배향
  • 백암파白巖派: 14세 김제金齊또는 김제金濟, 김제해金䶒海), 증 이조참판 고려 조봉랑 지평해군사, 시 충개공, 서원 배향
  • 농암파籠巖派: 14세 김주金澍, 고려 예의판서 황명예부상서 시 충정공, 서원 배향
  • 취수공파醉睡公派: 17世 김수양金粹讓, 성묘 등과 통훈대부 보령현감
  • 곤육재파困六齋派: 22세 김의원金義元, 신묘 문과 수세자 시강원보덕, 지제교 겸 춘추관수찬관
  • 송천공파松川公派: 23세 김천일金千鎰, 등문과 풍기군수 성균관 사예, 춘추관 편수관 예빈사정
  • 화의군파和義君派: 13세 김달상金達祥, 고려 지밀직사사 부대피난 일등공신, 신축호종 일등공신 화의군
  • 간의공파諫議公派: 12세 김우류金右鏐, 고려 우간의대부 우문관직제학, 지제고 봉익대부
  • 성암파省庵派: 22세 김효원金孝元, 알성 문과 세자좌부빈객, 이조참판 증가선대부, 서원 배향
  • 소암파素庵派: 22세 김이원金履元, 알성 문과 병조판서겸판의금부사, 세자사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겸 영경연사 홍문관 춘추관 관상감사 세자사 숭양부원군
  • 강호파江湖派: 16세 김숙자金叔滋, 중훈대부 성균관 사예, 증 중직대부 예문관 직제학 겸 춘추관기주, 증 자헌대부 호조판서 지춘추관사, 증 이조판서 양관대제학, 시 문강공, 서원 배향
  • 낭장공파郞將公派: 13세 김달경金達卿, 고려 중랑장
  • 대장군파大將軍派: 9세 김창서金昌緖, 고려 검교흥위위대장군
  • 양양공파良襄公派: 17세 김교金嶠, 병조판서 적개일등공신, 시 양양공, 선산부원군
  • 점필재파佔畢齋派: 17세 김종직金宗直, 전라도 관찰사겸 수군절도사, 한성부윤, 형조판서 증 영의정 시 문충공, 서원 배향
  • 우윤공파右尹公派: 12세 김득자金得資, 고려 삼사우윤
  • 과당공파苽堂公派: 17세 김종유金宗裕, 진사 관교수
  • 정조공파正朝公派: 12세 김연金延, 고려 정조正朝
                                     

3.3. 김선궁金宣弓 계 조선

  • 김익용金益容: 김효원의 9세, 문과 급제, 판서判書, 제학提學
  • 김세렴金世濂: 김효원의 손자, 문과 급제, 호조판서戶曹判書, 호당湖堂, 시호 문강공文康公
  • 김극빈金克鑌: 김효원의 조카, 선조조宣祖朝의 부마駙馬 일선위一善尉에 봉해짐
  • 김교金嶠: 김흥술의 14세손, 조선 무과 급제, 판서判書, 공신 선산부원군善山府院君에 봉해짐, 시호는 양양공良襄公
  • 김이원金履元: 김효원의 동생, 문과 급제, 병조판서, 판중추부사
  • 김종직金宗直: 김숙자의 아들, 문과 급제, 형조판서刑曹判書, 시호 문충공文忠公, 서원에 배향, 영남 사림파의 종장宗匠으로 추앙, 무오사화
  • 김효원金孝元: 김선궁金宣弓의 20세손, 문과 급제, 삼척부사三陟府使, 호당湖堂, 서원에 배향, 일파를 이룸
  • 김효정金孝貞: 김제의 손자, 문과 급제, 이조 판서吏曹判書 집현전대제학集賢殿大提學 예문관 대제학藝文館 大提學, 시諡 문정공文貞公, 서원 배향
  • 김숙자金淑滋: 김흥술金興述의 13세손, 문과 급제, 사예司藝, 시호 문강공文康公, 서원에 배향, 성리학 발전에 큰 업적을 쌓음
  • 김승순金承順: 숙신옹주 부마, 정종의 외손녀 사위
  • 김경직金敬直: 김주의 10세손, 문과 급제, 사도시정司導寺正, 서원에 배향
  • 김응기金應箕: 김지경의 아들, 문과 급제, 우의정 좌의정 영중추부사, 학식이 넓어 천문 지리 수학에도 정통, 시호 문대文戴, 서원에 배향
  • 김극빈金克鑌: 정근옹주 부마, 선조의 서녀 사위
  • 김지경金之慶: 김주의 손자, 대사간 강원도관찰사 개성유수 등을 역임, 시호 경질景質
  • 김자연金子淵: 증 이조판서 행 지낙안군수
                                     

3.4. 김선궁金宣弓 계 근 현대

  • 김동영: 정무장관, 제9 10 12 13대 국회의원
  • 김창종: 헌법재판소 재판관
  • 김영철: 대구 고검장, 법무 연수원장, 변호사
  • 김우석: 내무부 장관, 건설부 장관, 제13대 국회의원
  • 김태환: 제17 18 19대 국회의원
  • 김동리: 소설가
  • 김철수: 서울대 교수, 헌법학자
  • 김종택: 한글 학자, 한글 학회 회장, 한글 학회 이사장
  • 김영환: 제3대 과학기술부 장관, 제15 16 18 19대 국회의원
  • 김범부: 독립운동가
  • 김영선: 변호사, 제15 16 17대 국회의원
  • 김윤환: 허주虛舟, 킹메이커, 6선 국회의원, 대통령 비서실장, 민주자유당 대표, 신한국당 대표, 한나라당 고문, 정무 장관
                                     

3.5. 김선궁金宣弓 계 집성촌

  • 제주도
  • 전라남도 나주시 목포시 장흥군 신안군 일원
  • 부산광역시 전역
  • 경상북도 전역
  • 경상남도 창원시 진주시 밀양시 거창군 합천군 함양군 함안군 창녕군 김해시
  • 충청북도 충주시 일원
  • 충청남도 공주시 당진시
  • 대전광역시 전역
  • 경기도 이천시 일원
  • 대구광역시 전역
  • 전라북도 군산시 익산시 김제시 고창군 장성군 담양군 일원
  • 서울특별시 전역
  • 광주광역시 전역
  • 강원도 춘천시 원주시 홍천군 화천군 일원
                                     

3.6. 김선궁金宣弓 계 인구

  • 2015년 138.819명
  • 2000년 109.682명
                                     

4.1. 김한충金漢忠 계 역사

시조 김한충 金漢忠은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로 경순왕의 당제堂弟로 931년 2월 고려 태조가 신라를 방문하고, 귀국할 때 볼모가 되어 왕건을 따라가 고려조에 공신이 된 김유렴金庾廉의 고손이다. 시호는 원평공元平公이다.

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차례 승진하여 1087년선종 4 합문인진사閤門引進使 상경차도위上輕車都尉가 되어 요나라에 다녀오고, 이어 형부시랑 예부상서를 거쳐 추밀원사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역임하였다. 1097년숙종 2 동북면병마사로 덕원德源 지방을 노략질 하던 여진을 토벌하여 공을 세우고, 1107년예종 3 윤관尹瓘이 여진을 정벌할 때 중군병마사中軍兵馬使로 출정하여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의 부인이 문종文宗 비첩의 딸이었으므로 대성臺省 같은 청요직에는 취임하지 못하였다. 3남 2녀를 두었다. 현재 김한충金漢忠을 시조로 하는 계통은 남한 인구 조사에서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4.2. 김한충金漢忠 계 가족 관계

  • 차자: 김경원金景元 - 금 동경에 지례사로 감
  • 부인: 고려 문종 비첩의 딸
  • 장자: 김경초金景初
  • 장녀:?
  • 차녀: 수주최씨水州崔氏 최정崔精에게 출가 - 최사위崔士威 증손
  • 고조부: 김유렴金庾廉, 경순왕의 당제, 경순왕을 따라 고려에 귀부, 공신
  • 삼자: 김경약金景若
                                     

5.1. 김추金錘 계 추정 역사

시조 김추 金錘는 경순왕과 고려 태조의 맏딸인 낙랑공주 왕씨 소생의 8자로 상서령尙書令을 지내고 일선군一善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이후 세계가 실전되고 후손 고려말 화의군和義君 김기 金起를 1세조世祖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그는 중서령 김성원金成元의 아들로 고려말 출사하여 광주목사廣州牧使를 역임하고 화의군和義君에 봉해졌다. 기울어져 가는 고려의 사직을 개탄하여 관직을 버리고 불사이군不事二君 정신으로 낙향하여 선산군 옥성면 포상동浦上洞 하송산下松山 아래에 터를 잡고 살다 여생을 마쳤다. 화의和義는 선산善山의 별호인 관계로 후손들이 본관을 선산善山으로 하였다.

후손들이 번성하면서 비좁은 골짜기를 벗어나 청룡산과 당산 줄기가 사방 20리나 병풍처럼 둘러싸인 남쪽 들판으로 옮겨 들성 坪城이라 명하고 정착하여 500여년 세거지로 명성을 드높였다. 혹칭 들성평성 김씨 坪城 金氏 라고도 한다.

                                     

5.2. 김추金錘 계 추정 선계에 대해

화의군 김기金起의 5대손 김취문 金就文. 1509 ∼ 1570은 호가 구암久菴으로 청백리에 선정되고 강원도 관찰사 대사간을 역임하였는데 그의 저서 구암집에 선산 김씨들성의 먼 조상의 휘가 김한충金漢忠이라 하였다.

김선궁계 선산일선김씨 대동보 경오보庚午譜, 1690년에 의하면 판서공 김원로의 사위 김기 金起는 경주인慶州仁으로 고려 추밀사樞密司 김한충金漢忠의 후손으로 선산善山으로 개본改本하였다고 하였다.

                                     

5.3. 김추金錘 계 추정 시조에 대해

최근 들어 시조가 경순왕의 8자 일선군一善君 김추 金錘라 하는데, 조선 후기 1784년 개성 어느 산기슭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 원문에는 경순왕의 8자가 김종 金鐘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후 경주 김씨 일문 족보류에 경순왕 8자들이 등재되기 시작하였는데, 족보에 옮기는 과정에 이름을 개명改名하고, 시호를 작호作號하는 등 가필加筆을 심하게 하였다. 또 김은열 묘지명에 등장하는 경순왕의 8자들은 『고려사』 등의 문헌文獻은 물론이고, 그 어떤 금석문金石文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 삼척 김씨三陟 金氏도 시조 김위옹 金渭翁의 아버지를 경순왕의 8자 삼척군三陟君 김추 金錘라 한다. 그러나 증보문헌비고 조선씨족통보등의 문헌에는 김추 金錘를 시조로 하는 김씨金氏계는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시조 김추 金錘에 대해서는 각종 자료 및 견해가 난무하는 관계로 좀더 고증을 거쳐야 될 것으로 보인다.

                                     

5.4. 김추金錘 계 추정 분파

고려 말엽에 검교중랑장을 지낸 16세 김문金文은 슬하에 네 아들 김성원金成元, 김성부金成富, 김성룡金成龍, 김성여金成呂를 파조로 하여 4대파로 분파하였다.

  • 좌의정공파 左議正公派: 파조 김성룡金成龍은 고려말 산원동정散員同正을 지냈고, 조선개국 원종공신으로 대광보국 숭록대부 좌의정에 이르고 화의부원군和義府院君에 봉해졌다. 그의 아들 김탁金逴은 병조참의, 증손 김정신金鼎臣은 안동도호부사를 지냈다. 후손들은 경기도 이천등에 세거世居하였다.
  • 중서령공파 中書令公派: 파조 김성원金成元은 고려조 서운관정書雲觀正과 중서령中書省을 지냈다. 그의 아들 김기金起는 광주목사廣州牧使를 지내고 화의군和義君에 봉해졌다. 조선이 개국되자 불사이군 정신으로 선산善山에 내려와 고려 유신으로 절의를 지켰다. 화의和義는 선산善山의 별호이다.
  • 판서공파 判書公派: 파조 김성부金成富는 고려조 전의부정典醫副正을 지내고, 조선개국 원종공신으로 호조 판서에 이르렀다. 그의 장자 김경도金敬道는 조산대부로 밀양교수를, 차자 김경적金敬迪은 강화교수를 지냈다. 그 후손들은 함경도 단천 고읍을 중심으로 길주, 성진, 이원, 풍산, 북청, 홍원 등에 세거世居하였다.
  • 별장공파 別將公派: 파조 김성여金成呂는 고려말 별장동정別將同正을 지냈다. 그의 아들 김선金選, 손자 김요신堯臣, 김순신金舜臣등의 행적은 알지 못하고, 후손들이 평안도에 세거世居하였다.
                                     

5.5. 김추金錘 계 추정 고려

  • 김성원金成元: 서운관정, 중서령中書令에 추증
  • 김인선金印宣: 집현전 태학사
  • 김성룡金成龍: 산원동정散員同正
  • 김성여金成呂: 별장동정別將同正, 평안도 정착
  • 김기 金起: 중서령 김성원의 아들, 고려 말에 등제하여 정순대부 광주목사廣州牧使에 이르렀으며 화의군和義君에 봉해졌다. 고려가 망하자 슬퍼하며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節義를 지켜 선산善山에 은거隱居 종신終身하였다. * 김성부金成富: 전의부정典醫副正
  • 김숭金崧: 고려 때 문하시중
                                     

5.6. 김추金錘 계 추정 조선

  • 김취문 金就文. 1509 ∼ 1570: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문지文之, 호는 구암久菴, 김광좌金匡佐의 아들, 어려서부터 형 김취성과 함께 박영朴英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워 그 학통을 이었다. 1537년중종 32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지방 수령으로 전전하다가 사성司成이 되었다. 명종 때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으며, 1568년선조 1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뒤 대사간에 이르렀다. 문집으로서는 구암집久庵集이 전한다. 시호가 정간貞簡에서 문간文簡으로 바꾸었다.
  • 김몽화金夢華: 문간공 김취문의 후손, 1754년영조 30 4월 문과 급제, 한림 설서 승지를 거쳐 한성좌윤에 올랐다.
  • 김광좌金匡佐. 1466∼1545: 화의군 김기金起의 현손, 충무위忠武衛, 증이조참판, 들성에 세거하던 선산 임씨 상장군上護軍 임무林珷의 사위로 처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들성에 입향
  • 김경적金敬迪: 화의군 김기 아들, 교수敎授
  • 김경도金敬道: 화의군 김기 아들, 조산대부 밀양교수
  • 김종무金宗武. 1548 ~ 1592: 구암 김취문의 아들, 임진왜란 때 상주 북천전투에서 순국, 이조판서에 추증, 상주 충렬사忠烈祠에 제향
  • 김성진金聲振: 교위 김취연의 후손, 1801년순조 1 문과 급제, 사헌부감찰, 경상도 도사를 역임
  • 김원섭金元燮: 한성우윤 김하량金廈樑의 아들, 1672년현종 1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에 들어갔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으로 남인이 실세하자 관직에서 쫓겨났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재집권하자 다시 등용되어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청요직을 두루 거쳐 대사간에 이르렀다. 1692년 대신 민정중閔鼎重의 죄를 논하다가 단천으로 유배되었고, 이후 경흥으로 유배지를 옮겨 6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다 1699년 풀려났으며, 1710년 공주 보문산의 오두막에서 별세하였다.
  • 김하량金廈樑: 여헌 장현광張顯光의 문인, 1632년인조 10 식년문과 병과 급제, 안동부사 판결사 한성부우윤 등을 역임, 예조판서에 추증
  • 김천영金天英: 김취빈金就彬의 손자,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에 병과 급제, 성균관 전적
  • 김취성金就成. 1492 ~ 1550: 조선 전기의 학자, 증이조참판 김광좌의 장자, 자는 성지成之, 호는 진락당眞樂堂 또는 서산西山, 일찍이 박영朴英의 문하에 들어가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을 배워 존심양성存心養性의 방법과 관물성찰觀物省察의 오묘한 뜻을 터득하고, 무극無極과 태극太極의 묘용妙用을 배워 그 이치를 깨달았다. 한평생을 학문탐구에 몰두하고 일가를 이루었다. 만년에 김정국金正國과 이언적李彦迪의 추천으로 네 차례나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직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의학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함으로써 약성藥性과 경락經絡에 대한 지식이 깊어 병든 사람을 많이 치료하였다. 저서로는 『진락당집』이 있다.
  • 김중곤金仲坤: 절충장군
  • 김양선金揚善: 증이조참판 김광좌의 증손자, 조선 후기 문신, 동강 김우옹의 총애를 받았으며, 1616년광해군 8에 문과에 급제하여, 전적 감찰 형조좌랑을 거쳐 경상도사를 역임


                                     

5.7. 김추金錘 계 추정 근 현대

  • 김덕: 21대 통일원장관 겸 부총리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 김관용: 경북지사
  • 김성조 1958년: 16~18대 국회의원, 대학총장, 경북문화관광공사 사장
  • 김정묵金正默. 1888 ~ 1944: 일명 해산海山 규환奎煥. 일제강점기 중국으로 망명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김계란: 인터넷방송인
                                     

6. 참고 자료

  • 「종가의 제례와 음식」, 김종직의 생애, 국립문화재연구소 저, 김영사2005년, 9~1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