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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평 길씨 는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자 길씨의 유일한 본관이다. ..




                                     

ⓘ 해평 길씨

해평 길씨 는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자 길씨의 유일한 본관이다.

                                     

1. 역사

해평길씨세보海平吉氏世譜)에 따르면, 시조는 송나라에서 동래한 8학사의 한 명인 길당 吉唐이라고 한다. 길당은 고려 문종 조에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참지정당문학參知政堂文學에 오르고, 해평백海平伯에 봉해져서 해평海平으로 관적貫籍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선계가 불명확하여 고려 후기에 성균관생원成均館生員을 지낸 길시우 吉時遇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길시우의 증손인 야은冶隱 길재吉再는 1386년고려 우왕 12년 문과에 급제한 후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 문하주서門下注書 등을 지냈고, 조선 사림 학맥의 근원이 된다.

                                     

2. 인물

  • 길재吉再, 1353년 ~ 1419년: 아버지는 지금주사知錦州事 원진元進이고, 어머니는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추증된 김희적金希迪의 딸이다. 이색 정몽주와 함께 고려의 삼은三隱으로 불린다. 1374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383년우왕 9 사마감시司馬監試, 1386년 진사시에 급제하여 1387년 성균학정成均學正이 되고, 이듬해 순유박사諄諭博士를 거쳐 성균박사成均博士로 승진되었다. 당시 공직에 있을 때에는 태학太學의 생도들이, 집에서는 양반자제들이 모두 그에게 모여들어 배우기를 청하였다. 1389년창왕 1 문하주서門下注書가 되었으나,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선산으로 돌아왔다. 1391년공양왕 3 계림부鷄林府와 안변安邊 등의 교수敎授로 임명되었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으며, 우왕의 부고를 듣고 채과菜果와 혜장醯醬 따위를 먹지 않고 3년상을 행하였다. 1400년정종 2 세자 방원이 그를 불러 봉상박사奉常博士에 임명했으나 글을 올려 두 왕을 섬기지 않는다는 뜻을 펴니, 그 절의를 갸륵하게 여겨 예를 다해 대접해 보내주고 세금과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 1403년태종 3 군사 이양李楊이 그가 사는 곳이 외지고 농토가 척박해 살기에 마땅하지 못하다 하여 오동동의 전원田園으로 옮겨 풍부한 생활을 누리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는 소용에 필요한 만큼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돌려보냈다. 그를 흠모하는 학자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항상 그들과 경전을 토론하고 성리학을 강해講解하였으며, 오직 도학道學을 밝히고 이단異端을 물리치는 것으로 일을 삼으며 후학의 교육에만 힘썼다. 그의 문하에서는 김숙자金叔滋 등 많은 학자가 배출되어,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로 그 학통이 이어졌다. 저서로는 야은집이 전해지고 있다.
  • 길전식吉典植, 1924년 ~ 2011년: 제7대 국회상공위원장, 민주공화당 사무총장
  • 길재호吉在號, 1923년 ~ 1985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사법위원장, 제6대 국회내무위원장, 민주공화당 사무총장
  • 길겸吉謙: 길재의 6대손. 1546년명종 1 생원이 되었고, 1548명종 3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정랑, 청홍도평사, 당진현감, 도총관 등을 지냈다.
  • 길회吉誨, 1549년 ~ 1593년: 1570년선조 3 생원시에 합격하고, 1577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학유에 임용되었다. 1579년 어머니상을 당하여 일시 관직을 떠났다가 재차 예문관검열로 기용되어 신창현감新昌縣監을 지냈다. 1592년 병조정랑으로서 임진왜란을 맞아 선조를 호종하여 영변에 갔다가 어가御駕가 의주로 향하자 세자를 호종하였다. 그해 지평이 되고 이듬해 승문원교리 및 지평 헌납 직강 등을 역임하였으며, 선조가 환도할 때 연輦에 오르자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를 인용하여 연을 버리고 말을 타고 돌아갈 것을 주청하여 흔쾌한 윤허를 받았다. 이후 재차 헌납 장령 등 청요직淸要職을 역임하였다. 사후 1603년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추록되었다.
  • 길인화吉仁和: 조선 후기의 문신. 호는 입암笠巖. 생원시에 합격하여 제용감봉사 상서원직장 사축서별제,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를 역임하고, 동지중추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