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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릉, 당. 소릉 은 중국 당나라의 2대 황제 태종 이세민의 능원이다. 옛 당의 수도였던 장안지금의 시안시의 서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센양 시咸阳 ..




소릉 (당)
                                     

ⓘ 소릉 (당)

소릉 은 중국 당나라의 2대 황제 태종 이세민의 능원이다.

옛 당의 수도였던 장안지금의 시안시의 서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센양 시咸阳市 리취안현礼泉县 동북쪽 25km 지점에 위치한 해발 1.888미터 높이의 구준산九嵕山 기슭에 해당하고, 당대 황제의 능침인 당십팔릉唐十八陵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소릉의 설계는 염립덕閻立徳、염립본閻立本 형제가 맡아 정관 10년636년에 짓기 시작했는데, 이는 황제가 임종하기 전에 능원 완성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원래는 황후 장손씨의 능침으로써 조영이 시작되었고황후 장손씨는 636년 6월 사망, 태종 자신도 정관 23년649년 8월에 52세로 사망한 뒤에 그곳에 함께 묻혔다. 소릉은 당대의 다른 능침과 마찬가지로 분구墳丘를 따로 조영하지 않고 산 자체를 하나의 분구로 삼아 현실을 조성하였다. 이러한 축조 방식은 백성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라는 태종의 의도였다고 전하며, 이후 당 왕조의 역대 제왕들의 능침을 짓는데 있어 하나의 선례가 되었다.

당서 고려전에 따르면, 당 고종 총장 원년668년 당이 고구려를 멸망시켰을 때 항복한 고구려의 보장왕과 천남건 등 옛 고구려 왕족과 신하들을 당으로 압송, 소릉으로 끌고 가서 사죄하는 의식을 치르게 하였다고 한다.

능 앞에는 난총평乱冢坪이라 불리는 산기슭에 걸쳐 무수한 배장묘陪葬墓들이 부채꼴처럼 펼쳐져 있는데, 그 수는 대략 2백 기 이상이며 당 초기의 제후왕과 공주의 무덤을 비롯해 위징魏徵、이정李靖、이세적李世勣、방현령房玄龄、울지공尉迟恭 등 공신들의 무덤도 포함되어 있다.

태종이 붕어하였을 때 태종이 생전에 보물로써 애지중지하였다는 명필가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서』蘭亭叙도 함께 묻혔다고 전한다. 소릉에는 벽화가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소릉은 오대십국 시대 후량後梁의 군인 온도温韜에 의해 도굴당했고, 껴묻거리로 묻혔던 많은 명품도 무덤 바깥으로 유출되어 소실되었다. 또한 남당서南唐書 정원소전鄭元素伝에는 원소가 소릉을 도굴하려고 무덤 안으로 들어 갔을 때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 기록에서 소릉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소릉의 지상에 보이는 것은 현무문의 일부와 마멸된 석비 일부 뿐이다. 소릉육준昭陵六骏이라는 유명한 당 태종의 여섯 마리 애마의 부조浮雕는 원래는 능원 북쪽의 제단 사마문司馬門, 외문의 동서 양무廡에 설치되어 있던 것으로, 육준은 수 왕조 말기 태종이 여러 전란의 와중에 타고 다녔던 자신의 애마 여섯 마리를 부조로 새기도록 한 것이다. 육준의 이름은 각기 돌궐 내지 대식페르시아의 말에서 따온 것으로 백제오白蹄烏、특륵표特勒驃、삽로자颯露紫、청추青騅、십벌적什伐赤、권모과拳毛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박물관에 소장된 삽로자와 권모과를 제외한 나머지 4점은 시안비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모든 돌에 남아 있는 갈라진 자국은 무게 2.5톤에 달하는 부조를 중국 국외로 반출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자 부조를 여러 조각으로 잘게 쪼개서 옮겼기 때문이라고 전하고 있다.

소릉 침전寢殿 앞 양측에는 14개의 석상이 배치되어 있는데, 당에 번국을 자처하며 조공을 바쳤던 14개 국의 군장을 상징하는 십사국번추석상十四國番酋石像으로 현재는 7개의 상과와 몇 구의 몸체 파편과 두상 조각 등만이 남아 있다. 각각의 상좌像座에 각국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14개 국의 군장은 당의 좌위대장군으로 임명되었던 돌궐의 힐리 가한 아사나돌필阿史那咄苾, 우위대장군으로 임명되었던 돌리 가한 아사나십발필阿史那什鉢苾, 우무위대장군으로 임명되었던 을려니숙후리필가한乙沴泥孰候利苾可汗 아사나사마阿史那思摩, 우위대장군 답포가한答布可汗 아사나사이阿史那社爾, 설연타薛延陀의 진주비가 가한珍珠毗加可汗 이남夷南, 토번의 찬보贊甫 송첸 감포松贊干布, 낙랑군왕樂浪郡王으로 봉해졌던 신라의 김진덕金眞德, 하원군왕河源郡王으로 봉해졌던 토욕혼의 오지야발륵두가한烏地也拔勒豆可汗 모용낙갈발慕容諾曷鉢, 쿠차의 왕 가려포실필呵黎布失畢, 호탄于闐의 왕 복사신伏闍信, 언기焉耆의 왕 용돌기지龍突騎支, 고창의 왕으로 우무위장군 국지용麴智勇, 임읍林邑의 왕 범두리范頭利, 파라문婆羅門 제나복제국帝那伏帝國의 왕 아나순阿那順이다.

소릉에서처럼 산을 황릉으로 조성하거나 황릉 능침 앞에 석인상과 석조 안마鞍馬상을 배치하는 것은 돌궐의 풍속을 수용한 것으로, 소릉의 석인상은 중국 한족 전통의 문신이나 무장의 옹중翁仲이 아니라 궁궐을 지키는 번신蕃臣을 상징하는 이민족의 형상이며, 그 가운데 대부분은 변방의 군장으로써 당 조정에서 대장군이나 장군을 겸직했던 번장으로써 성명을 새겨 각 부족과 당 제국간의 복속관계를 나타냈다. 석상의 인물들은 두 손으로 복부에 교차시킨 자세로, 이민족들로부터 천가한天可汗의 존호를 받았던 황제 당 태종의 권위에 굴종하여 그 명령을 듣는 모습 혹은 잔을 들어 천자의 조정에 공물을 바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또한 비문도 많이 남아 있는데, 구양순欧陽詢이 지은 「온언박비」温彦博碑나 저수량褚遂良이 지은 「방현령비」房玄齢碑 등이 전하고 있다.

1979년 소릉박물관昭陵博物馆이 세워졌다. 소릉은 중국의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