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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성 구씨 는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




능성 구씨
                                     

ⓘ 능성 구씨

능성 구씨 는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1. 역사

시조 구존유 具存裕는 고려의 공신으로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을 지냈다.

2세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구민첨具民瞻, 3세는 문하좌정승門下左政丞을 지낸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구연具珚, 4세는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구예具藝, 5세는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낸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구영검具榮儉, 6세는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문정공文貞公 구위具禕와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지낸 구흥具興과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낸 구의具義가 있다. 고려 말 좌시중左侍中 7세 문절공文節公 구홍具鴻은 조선의 개국에 협력하지 않고 은둔하여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능성 구씨는 무인의 명가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를 지낸 구사직具思稷, 훈련대장 등을 지낸 구굉具宏, 어영대장인 구인후具仁垕, 총융사摠戎使인 구인기具仁墍, 어영대장인 구문치具文治, 총융사인 구감具鑑, 훈련대장인 구성임具聖任, 훈련대장인 구선복具善復 등이다. 이 중 구굉 구인후 구인기는 인조반정仁祖反正의 공으로 정사공신靖社功臣에 녹훈錄勳되었다.

또한 세조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을 지낸 구치관具致寬, 강릉대도호부사를 지낸 구치홍, 성종 때 상주목사를 지낸 구치명, 경상우도절도사를 지낸 구겸, 중종반정中宗反正의 정국공신靖國功臣인 구현휘具賢暉 구수영具壽永, 성종 때 좌리공신佐理功臣인 능원군 구문신具文信 등이 있다. 중종의 부마 구사안具思顔, 인조의 외조부이며 이조판서 좌찬성 숭록공신崇祿功臣에 오른 구사맹具思孟, 시문에 뛰어나고 관찰사 참판 대사헌을 지낸 구봉령具鳳齡 등이 있다. 조선의 왕족으로는 원종의 비 인헌왕후조선 제16대 왕 인조의 어머니가 있다. 능성 구씨는 영조대英祖代에 이르기까지 조선왕조 권력의 핵심에서 가문의 세를 떨쳤다.

능성구씨사료집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총 562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는데, 그 가운데 진사 144명, 문과 55명, 무과 363명으로 무과 출신이 65%를 차지한다. 이를 파별로 보면 도원수파 359명, 판안동파 72명, 좌정승파 42명으로 역시 이들 3파가 전체의 84%를 차지한다. 무과 출신 가운데 영조 때까지 종2품의 장신급將臣級이 9명이나 배출되었는데, 이는 그 때까지의 장신 총수의 12분의 1에 해당한다.

                                     

2. 분파

능성 구씨는 시조 구존유의 7대손에 이르러 판사파判事派 전서파典書派 시랑파侍郞派 좌정승파左政丞派 판안동파判安東派 도원수파都元帥派 재신파宰臣派 낭장파郎將派 감무파監務派 임천군사파林川郡事派 참판파參判派 문천군사파文川郡事派의 12개 파로 나뉜다. 이중 후손들이 이북 지역에 살고 있지만 남북 분단으로 전고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재신파宰臣派, 후손이 없어 무후无后된 전서파典書派와 임천군사파林川郡事派의 3개 파를 제외한 9개 파 후손들이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 좌정승공파左政丞公派: 파조派祖 좌정승左政丞 구홍具鴻
  • 전서공파典書公派: 파조派祖 공조전서工曹典書 구현로具賢老
  • 판사공파判事公派: 파조派祖 사재감판사司宰監判事 구현좌具賢佐
  • 낭장공파郎將公派: 파조派祖 낭장郎將 구현보具賢輔
  • 문천군사공파文川郡事公派: 파조派祖 문천군사文川郡事 구원립具爰立
  • 도원수공파都元帥公派: 파조派祖 도원수都元帥 구성로具成老
  • 감무공파監務公派: 파조派祖 감무監務 구현기具賢器
  • 판안동공파判安東公派: 파조派祖 판안동判安東 구성량具成亮
  • 참판공파參判公派: 파조派祖 참판參判 구성미具成美
  • 시랑공파侍郞公派: 파조派祖 시랑侍郞 구영량具英良
                                     

3. 기원

능성 구씨의 시조 구존유가 1224년 주잠과 함께 중국에서 도래하였다는 일부의 주장이 있으나, 중국에 있는 신안 주씨의 기록에 구존유는 고려인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1224년 이전부터 호남 지방에 토착 구具씨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가 멸망한 뒤 나주羅州에서 포로로 잡힌 백제 장군 구도具道의 아들 구단서具端舒가 있고, 궁예의 태봉국 시중侍中이었던 구진具鎭이 918년태조 1 나주도羅州道 대행대大行臺 시중侍中에 임명되었으며, 1101년고려 숙종 6년에 탁라乇羅 성주星主인 배융부위陪戎副尉 구대具代가 유격장군遊擊將軍에 임명되었던 사실을 고려사高麗史)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구씨具氏가 예로부터 나주羅州나 능성綾城 지역의 토착 성씨로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능성현綾城縣 토성조土姓條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능성현綾城縣 토성조土姓條에도 구씨具氏를 능성현綾城縣의 대표적인 토착 성씨로 기록하고 있다.

대종회에서는 역사서를 근거로 중국 도래설을 반박하고 능성 구씨가 토착 성씨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첫째, 고려 이전에도 호남 지방에 토착 구씨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둘째, 본문에 언급한 바와 같이 여러 역사서에 능성 구씨가 토착 성씨로 기록된 점이다. 셋째, 중국 측 주씨의 기록에는 구존유가 고려인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에 편찬된 신안 주씨의 족보를 토대로 능성 구씨가 중국계 성씨임을 주장하는 일각의 주장은 역사 사실과 맞지 않다. 넷째, 현재 중국에는 구具씨 성을 가진 씨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능성 구씨가 중국계 성씨라는 주장은 모화사상에 기초하여 중국과의 관련성을 부각하고자 했던 시도로 보는 것이 설득력 있다.

                                     

4. 본관

능성綾城은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능주면綾州面의 옛 지명이다. 백제시대에 이릉부리현爾陵夫里縣 또는 죽수부리현竹樹夫里縣‧인부리현仁夫里縣‧연주부리현連珠夫里縣 등으로 불렸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능성군陵城郡으로 바꾸고 무주武州: 광주光州)의 속현屬縣이 되었으며 부리富里‧여미汝湄 등의 현을 관할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는 능성綾城으로 개칭하였고, 1018년현종 9 나주羅州의 속현屬縣이 되었다가 1143년인종 21에 능성현으로 승격하였다. 1416년태종 16 화순을 병합하여 순성현順城縣이 되었다가, 1418년 화순이 분리되었다. 임진왜란 때에 다시 화순을 병합하기도 하였다. 1632년인조 10에 능주목으로 승격하였고 이릉爾陵이라고도 불렸다. 1895년고종 32 나주부 소속의 능주군이었고 1896년 전라남도 능주군으로 개편되었다. 1908년에 능주군이 화순군을 병합하였으나, 1914년 능주군을 화순군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능주면이 화순군和順郡에 편입되었다.

                                     

5. 조선 왕실과의 인척 관계

  • 원종비 인헌왕후 - 조선 제16대 국왕 인조의 어머니
  • 휘신공주연산군의 적장녀 부마 구문경
  • 소현세자인조의 적장남의 적장녀 경숙군주의 부마 구봉장
  • 영응대군세종의 적8남의 적장녀 길안현주의 부마 구수영
  • 화길옹주영조의 서11녀 부마 구민화
  • 안양군성종의 서2남 정부인 면천군부인 능성 구씨
  • 효순공주중종의 적3녀 부마 구사안
  • 덕천군정종의 서10남의 서장녀의 남편 구세기
                                     

6. 인구

  • 2000년 능성 구씨 37.706가구 120.503명 + 능주 구씨 7.807가구 25.484명 = 145.987명
  • 1985년 능성 구씨 27.231가구 111.834명 + 능주 구씨 3.938가구 17.010명 = 128.844명
  • 2015년 능성 구씨 109.669명 + 능주 구씨 62.574명 + 릉성 구씨 1.460명 + 릉주 구씨 458명 = 174.16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