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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고씨 는 제주도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탐라 개국설화에 등장하는 고을나 이다. 고을나髙乙那의 45세손인 탐라국왕耽羅國王 고자견髙自堅의 아들 ..




제주 고씨
                                     

ⓘ 제주 고씨

제주 고씨 는 제주도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탐라 개국설화에 등장하는 고을나 이다.

고을나髙乙那의 45세손인 탐라국왕耽羅國王 고자견髙自堅의 아들 고말로 髙末老가 고려에 내조來朝하여 태조에게 성주星主 왕자王子의 작爵을 받았다.

                                     

1. 역사

제주 고씨의 시조는 탐라耽羅 개국 설화에 나오는 삼신인三神人 가운데 한 사람인 고을나 髙乙那이다. 탐라 개국설화에 의하면, 한라산 북쪽 기슭 삼성혈三姓穴에서 양씨,부씨와 함께 세 신인神人이 출현하였다. 그 후 제주도로 표류漂流해 온 상자에서 세 명의 여자, 오곡종자五穀種子, 가축이 나와 이들과 함께 섬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고을나의 15세손 고후高厚 고청高淸 고계高季 세 형제가 배를 만들어 타고 바다를 건너 탐진耽津: 現 전라남도 강진군에 이르렀고, 신라에 내조來朝하여 고후는 성주星主, 고청은 왕자王子, 고계는 도내徒內라는 칭호를 받았다. 처음 왔을 때 탐진에 정박하였기 때문에 탐라耽羅라는 국호國號를 받았다.

고을나의 45세손 탐라국주 고자견高自堅의 태자 고말로 高末老가 938년태조 21년 고려에 내조來朝하여 성주星主 왕자王子의 작爵을 받았고, 자치를 허락 받았다. 이후 조선 초기까지 후손들이 성주의 칭호를 계승하며, 탐라국을 세습 통치하였다.

고말로의 세 아들인 고유高維, 고강高綱, 고소高紹가 모두 과거에 급제하고 관직에 올라서 제주고씨가 육지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에 후손들은 고말로를 중시조中始祖로 하고 시조의 발원지인 제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가문을 크게 번창시켰다.

                                     

2. 기원

탐라 역사는 반만년 역사로 표기하고 있지만 실제 역사 출발은 제주 3성이 철기를 가지고 이주해 온 철기 문화부터이며 초기에는 고구려와만 사신 왕래를 하였고 왕이라는 뜻의 을라가 고구려, 부여어로 대족장 이라는 뜻이여서 삼성혈, 삼족오 처럼 3을 신성시 여기는 부여계 고구려와 같은 고씨로 추정하는 설도 있다. 조선 초까지 왕위직을 유지했기 때문에 1500년 이상 왕조를 유지했다.

                                     

3.1. 본관 관련 유적

제주 삼성혈三姓穴은 삼을나三乙那의 탄생지로 매년 춘추제春秋祭 및 건시제乾始祭를 봉향하고 있으며, 사적 제134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 벽랑국에서 보내온 삼공주와 혼인했다는 혼인지婚姻址가 지금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에 남아 있고 제주도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경공 고조기 묘文敬公高兆基墓는 고려 시대 제주인 최초로 수상에 올랐던 고조기高兆基의 묘로, 제주시 아라동 2464번지에 있다. 묘역에는 ‘고려중서시랑평정사高麗中書侍郞平章事 고조기묘高兆基墓’를 중심으로 좌측에 ‘유향고공지묘留鄕高公之墓’, 우측에 비명을 알 수 없는 묘가 배치되어 있다. 장방형 봉분의 네 귀퉁이에는 현무암 재질의 자연석을 2단으로 쌓아 올렸다. 또한 봉분의 정면에는 중앙에 이중 제단을 두고, 좌측에 높이 3.4m의 ‘고조기시문비高兆基詩文碑’, 우측에 중서시랑고조기묘비中書侍郞高兆基墓碑‘라는 애초의 비석도 그대로 세워졌다. 이처럼 문경공 고조기 묘는 제주에서 주인공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무덤으로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새로이 이곳에 탐라원을 개설하여 옛날 탐라국 선조들의 위패를 모시고 매 해마다 종문회를 개최하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

                                     

3.2. 본관 집성촌

탐라국의 왕족이였던 제주고씨濟州高氏는 신라 경순왕과 함께 고려 왕조에 귀부하면서 대체로 4세 고공익高恭益 대를 전후하여 관향貫鄕인 제주濟州에서 주요 왕족 많은 수가 고려의 수도인 개성開城 ㆍ 장단長湍 등 경기 지역으로도 옮겨와 살게 되었다. 내부적으로 황제국을 지칭한 고려는 탐라국 왕위직인 성주星主직을 유지하며 조선 초기까지 벼슬과 함께 별도의 왕위직을 세습하였다. 대표 가문에는 태조 이성계의 부관으로 조선개국공신인 고여髙呂 장군이 시조로 하는 고성군파高聖君派가 있다. 개국공신의 공로로 후손들은 과거없이 음서제 벼슬을 유지하였다. 국가에 공로를 많이 세우며 크게 번성하여 현 서울특별시 은평구 신사동 일대에 땅을 하사받았으며 고택골고씨마을로 불리는 집성촌을 이루었다. 영조가 수원성을 축성하기 위하여 부자들을 발탁할 시기에 재산을 기부헌납하며 옥잔에 어주를 받았고 경기도 수원시로 이주하여 수원에도 집성촌을 이루었다. 유물인 옥잔은 비교적 최근까지 전해 내려오다가 몇십년전에 후손들 사이에서 유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이야기들은 변형되어 수원시의 민간 전례 이야기에 고씨 부자들이 살았었다는 고마참 전설로 남아있다. 허나 조선말에 대대적인 역병이 돌때 세가 크게 위축되었고 고택골과 고마참은 지금까지 큰 공을 세운 고씨장군 이야기와 함께 공동묘지로, 고씨부자들이 살다가 큰 참변을 당한 고마참이라는 지역 흉지전설로 전해지게 되었으며, 고택골로 가다가 죽었다라는 전국적 관용어 표현이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0세 고인단高仁旦의 자손들인 성주공파星主公派와 전서공파典書公派는 청주淸州와 서울 ㆍ 일본 등지에서 많이 살았던 사실이 ‘계해보癸亥譜’에 보이며, 영곡공파靈谷公派는 큰 아들 고태필高台弼의 후손들은 주로 제주도에 세거하엿으며 나머지 세아들 고태승高台昇, 고태보高台補, 고태익高台翼의 후손은 경기도 ㆍ 강원도 ㆍ 충청도 ㆍ 전라도 경상도 ㆍ 이북 5도 등지에 세거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충공파文忠公派는 문충공文忠公 고경高慶의 고조부高祖父인 고돈겸高惇謙이래로 세거해온 개성開城을 비롯하여 전북 ㆍ 경기 ㆍ 강원도 ㆍ 충청도 ㆍ 경상도 일원에 많이 살았으며, 그 중 일부는 19세 고종필高宗弼 ㆍ 고몽필高夢弼의 대를 전후하여 황해도 연백延白으로 옮겨가 터를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개성에 있던 고돈겸高惇謙은 12세기 중엽에 중앙의 고위 관리로 있다가 모함을 받고 현재의 전북 군산시 오식도동으로 유배되었으나 유배가 풀리지 않자 계속 거주하게 되었고, 그 후손들이 옥구에 터를 잡고 세거하게 되었다. 후손 문충공이 고려의 명망 높은 학자로 명문가를 이루게 되었는데 ‘문충공’은 고돈겸의 현손 문충공 고경高慶이다. 곧, 고돈겸은 옥구에 세거한 제주 고씨 문충공파의 입향조이다. 문충공파는 고돈겸 이래로 고려 조에서만 9상서 12한림의 명현을 배출하였다.

한편 장흥백파長興伯派는 고중연을 시조로 하며 그 중 창평 고씨가 유명하고 장성 삼계 등 전라남도 일대에서 오랫동안 세거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화전군파花田君派는 14세 고숭례高崇禮의 후계後系가 전남 구례求禮로 옮겨갔으며, 화전군花田君 고인비高仁庇의 9대손 고광후高廣後가 인조조에 이인거李仁居의 난을 피해 횡성橫城에서 영월寧越로 옮겨갔던 사실 등으로 미루어 강원도와 영 ㆍ 호남 지방에 많이 살았던 것 같다.

문정공파文禎公派는 11세 고환高桓의 대 이후에 남원南原 등 전북지방에 많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고, 상당군파上黨君派는 12세 고철高哲이 조선 태조조에 함남 북청北靑으로 가 자리를 굳혔던 이래 함경도와 청주淸州 등지에서 세거했다고 믿어진다.

양경공파良敬公派는 경북 상주尙州와 문경聞慶 등지에 많이 살았던 사실이 계해보癸亥譜에 나타나 있다.

그리하여 1930년경에 이르러 제주고씨濟州高氏는 서울 일원,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선원면仙源面 ㆍ 불은면佛恩面, 강원도 정선군旌善郡 일원과 영월군寧越郡 하동면下東面, 충북 음성군陰城郡 원남면遠南面, 충남 금산군錦山郡 부리면富利面, 전북 완주군完州郡 구이면九耳面 ㆍ 고산면高山面, 김제군金堤郡 백산면白山面, 고창군高敞郡 성내면星內面, 남원군南原郡 산동면山東面, 옥구군沃溝郡, 정읍군井邑郡 고부면高阜面,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ㆍ 주산면舟山面 일원 전남 광주시光州市 ㆍ 구례군求禮郡 일원, 무안군務安郡 신안면新安面, 광산군光山郡 하남면河南面 ㆍ 대촌면大村面, 담양군潭陽郡 창평면昌平面 ㆍ 고서면高西面 ㆍ 고흥군高興郡 ㆍ 봉래면蓬萊面, 장성군長城郡 삼계면森溪面, 신안군新安郡 임자면荏子面, 여천군麗川郡 화정면華井面, 경북 문경군聞慶郡 산양면山陽面 ㆍ 영순면永順面, 경남 진양군晉陽郡 금산면琴山面, 제주도 제주시濟州市, 남南 ㆍ 북제주군北濟州郡 일원, 황해도 연백군延白郡 일원, 평남 용강군龍岡郡 삼화면三和面, 평북 용천군龍川郡 용암포읍龍岩浦邑, 그리고 함남 홍원군洪原郡 ㆍ 북청군北靑郡 일원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전남 광산군光山郡 대촌면大村面의 압촌리鴨村里 마을은 오늘날에도 많은 자손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다. 바로 임진왜란 때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이 나고 자란 고향이기도 하며, 처음으로 이 곳에 터를 잡게 된 것이 고경명高敬命의 증조인 고자검高自檢의 대부터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 마을에는 고경명高敬命의 자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특히 고경명高敬命의 다섯아들 가운데 장남인 고종후高從厚 및 고순후高循厚 ㆍ 고인후高因厚 ㆍ 고용후高用厚의 후예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으며, 고종후高從厚의 동생인 고인후高因厚의 후예가 옮겨가 정착한 담양군潭陽郡 창평리昌平里에 많이 살고 있다.



                                     

4. 분파

주요 종파로는 성주공파星主公派 전서공파典書公派 영곡공파靈谷公派 문충공파文忠公派 장흥백파長興伯派 화전군파花田君派 문정공파文禎公派 상당군파上黨君派 양경공파良敬公派 등이 있다.

                                     

4.1. 분파 분관

고말로의 증손 고공익高恭益은 상당 고씨上黨高氏, 또 다른 증손 고영신高令臣은 개성 고씨, 고말로의 10세손 고중연은 장흥 고씨長興高氏, 후손 고종필高宗弼은 연안 고씨延安高氏, 고말로의 23세손 고응섭高應涉은 안동 고씨安東高氏로 분적하였다.

고봉 고씨, 금화 고씨, 담양 고씨, 면산 고씨, 옥구 고씨, 용담 고씨, 의령 고씨, 청주 고씨, 토산 고씨, 회령 고씨 등도 제주 고씨에서 동원 분적된 본관이다.

                                     

5. 참고자료

  • 뿌리찾기운동본부 편저 1998년 4월 25일. 한글판 우리집의 족보. 서울: 민중서원. 부록 9~10쪽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