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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강씨, 강이식. 진주 강씨 는 고구려 병마도원수 강이식 장군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




진주 강씨 (강이식)
                                     

ⓘ 진주 강씨 (강이식)

진주 강씨 는 고구려 병마도원수 강이식 장군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1.1. 역사 시조 강이식

진주강씨晉州姜氏의 시조는 고구려 병마도원수兵馬都元帥를 역임한 강이식姜以式 장군이다. 다만 삼국사기, 구당서舊唐書 등 정사正史에서는 고증되지 않는다. 고구려 강이식 장군은 597년고구려 영양왕 8년 수 문종이 침략을 하려고 무례한 국서國書를 고구려에 보내오자, "칼로써 대답하자"고 주장하며, 이듬해 병마원수兵馬元帥로서 정병 5만 명을 이끌고 참전하였다고 한다. 이듬해에는 대병력을 이끌고 요서遼西에서 수나라 요서총관 위충韋沖과 교전한 뒤, 임유관臨谕關으로 거짓 후퇴하였다가 다시 수군을 이끌고 바다로 나가 수나라 수군총관 주나후周羅喉의 30만 수군을 크게 격파하고 개선하였다고 한다.

신채호申采浩의 조선상고사朝鮮上古事)에 따르면, 묘墓는 만주滿洲 심양현瀋陽縣 봉길선 원수림 역 앞에 병마원수강공지총兵馬元帥姜公之塚이라는 큰 비석이 있었다고 하나, 중국 문화혁명 때 소멸되고, 돌조각과 거북좌대만 묘역에 남아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서동 871-1에 강이식 장군을 모신 봉산사가 있다. 해마다 음력 3월 10일에 그를 제향한다.

                                     

1.2. 역사 진양후 강진

6세손인 택인擇仁이 839년에 복업과에 합격하여 밀직부사密直副使 등을 지낸 후 진안후晋安侯에 봉해졌고, 그의 아들 진縉은 역시 875년에 숭인전사운과崇仁殿四韻科에 장원급제壯元及第하여 진양후晉陽侯에 봉해졌다.

이는 고구려 멸망 이후 안동지방 준재俊才를 발탁하기 위해 실시한 과거에서 강진姜縉이 650년 경에 출생하여 676년 전에 이미 과거에 장원급제한 후 태중대부 판내의령 太中大夫判內議令을 역임하다가 진양후晋陽候에 봉해진 이후이다. 이 때부터 진주강씨의 본관을 진주晉州로 하게 되었다.

태백오현 도은공, 잠은공 형제 가문이 경북 지방에 정착하여 후대에 많은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2. 분파

각 파를 보면 강이식을 동일 시조로 하여 강계용姜啓庸을 중시조로 하는 박사공파博士公派가 있고, 강위용姜渭庸을 중시조로 하는 소감공파少監公派, 강원용姜遠庸을 중시조로 하는 시중공파侍中公派, 강민첨姜民瞻을 중시조로 하는 은열공파殷烈公派, 강감찬姜邯贊의 아버지 강궁진姜弓珍을 중시조로 하는 인헌공파仁憲公派가 있다. 박사공파는 어사공파御使公派라고도 하며, 시중공파는 관서대장군파關西大將軍派라고도 한다. 인헌공파는 강감찬의 출생지가 금천衿川이라고 하여 금천서울 금천구강씨라고도 한다.

                                     

2.1. 분파 박사공파

박사공파의 중시조는 강계용이다. 그는 국자박사國子博士로 고려 원종 때 통신사서상관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그의 손자 강사첨姜師瞻의 5세손 중 첫째 아들 강회백의 후손은 통정공파通亭公派를, 둘째 아들 강회중姜淮仲의 후손은 통계공파通溪公派를 형성하고 있다.

통정공파의 파조 강회백은 고려 말에 대사헌을 지내고 조선 개국 후 동북면도순문사東北面都巡問使에 올랐다. 그의 아들 강석덕姜碩德은 세종의 둘째 부인 영빈강씨의 아버지가 된다. 그는 개성유수와 지돈령부지사知敦寧府事 등을 지냈다.

강석덕의 아들 강희안姜希顔 강희맹姜希孟 형제는 통정공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강희안은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집현전 직제학이 되어 정인지 성삼문 등과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였다. 뒤에 단종복위에 연루되었으나 성삼문의 변호로 화를 면하고 뒤에 호조참의를 지냈다. 그는 시서화삼절詩書畵三絶이라 불릴 정도로 당대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연산군 때 우의정을 지낸 강구손姜龜孫은 강희안의 아들이고,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낸 강맹경姜孟卿은 강희안의 4촌형이 된다. 강희안의 동생 강희맹은 문장가이자 서화가로 이름이 높았다. 그는 세조의 총애를 받아 세자빈객世子賓客이 되고 병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거쳐 좌찬성에 올랐다.

강회중의 후손인 통계공파에서는 선조 때 우의정을 지낸 강사상姜士尙과 역시 선조 때 평난공신에 오르고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거쳐 중추원판사를 지낸 진흥군眞興君 강신姜紳이 있으며, 왕자사부王子師傅를 거쳐 임진왜란 때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오르고, 진창군晋昌君에 봉해진 강인姜絪 형제가 있다.

또한 정묘호란의 주역으로 불리는 강홍립姜弘立도 강신의 아들이다. 특히 강인의 후손은 고종 때에 와서 강준흠姜浚欽 강시영姜時永 강문형姜文馨 강난형姜蘭馨 강우형姜友馨 강국형國馨 등 판서급 인물을 배출해서 명문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 밖에도 인조 때 화포술火砲術을 개발한 강홍중姜弘重도 통계공파의 사람이다.



                                     

2.2. 분파 소감공파

박사공 강계용의 아우인 강위용은 고려 때 사도소감司徒少監을 지냈으며, 진주강씨 가문의 5대 파조로 소감공파의 파조이다. 그의 4대손 강태姜泰는 가선대부 대상嘉善大夫 大相으로 있으면서 오랑캐의 침입을 당했으나, 부친상을 당하여 엎드려 곡하면서 한사코 자리를 뜨지 않자 오랑캐도 감탄하여 해를 입히지 않았다고 전한다.

                                     

2.3. 분파 관서공파

관서대장군關西大將軍 강원로姜元老를 파조로 하고 있다. 그의 조부는 고려 중기 판문하시중判門下侍中을 지낸 강원용이며, 보문각직제학을 역임한 강기문姜起文이 친부이다. 후손들에서 많은 문하시중이 배출되었는데, 그중 전객령 문하시중을 역임한 강윤보姜允輔는 포은 정몽주와 도의교道義交를 맺기도 했다. 그는 조선이 건국되자 벼슬을 버리고 은거해버렸다. 또 9세손 강행姜行은 세조 때 일어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기도 했다.

                                     

2.4. 분파 은열공파

은열공파는 고려 때 강감찬 장군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귀주대첩에서 거란을 물리친 은열공 강민첨을 중시조로 하는 파이다. 강민첨은 고려 광종 14년에 진주에서 태어났다. 현종 때 동여진東女眞이 영일과 청하로 쳐들어오자 도부서都部署의 문연文演 이인택李仁澤 등과 함께 이를 격퇴하였다. 또 1018년에는 거란군이 고려를 침입하자 강감찬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흥화진興化鎭에서 적을 대파하였다. 패배한 소배압의 군사가 다시 개경으로 쳐들어오자 이를 추격하여 자주慈州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그 공으로 응양상장군이 되고 일등공신에 녹훈되었으며, 이듬해 지중추사 병부상서가 되었다. 시호는 은열이다.

그의 후손으로 조선 후기의 문인 화가 평론가로 유명한 강세황姜世晃이 있다. 그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시 서화에 열중하였고, 영조의 권유로 61세에 들어서 관직에 나가 병조참의와 한성부판윤을 지냈다. 그는 한국적인 남종문인화풍을 정착시키고 진경산수화를 발전시켰고, 풍속화 인물화를 유행시켰다. 그의 제자가 바로 김홍도이다.

그의 후손으로 강이오와 강이중은 혼천시계를 제작했으며, 강이오의 아들로 한성판윤을 지낸 강윤姜潤과 강건 형제는 휴대용 해시계앙부일구를 만들었다. 또한 그들 아들들도 앙부일구를 제작했다.

                                     

2.5. 분파 인헌공파

인헌공파는 본래 금천 강씨 衿川 姜氏이다. 삼한벽상공신 여후三韓壁上功臣呂侯 강궁진을 파조로 하고 있다. 강궁진은 고려를 건국할 때 태조 왕건으로부터 삼한벽상공신으로 봉해졌으며 여후呂侯로 있었다.

강궁진의 아들이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강감찬이다. 강감찬은 임헌복시任軒覆試 갑과에 장원급제하고 거란 10만 대군을 귀주에서 전멸시켰으며, 1030년현종 21에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 현종의 묘정廟廷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인헌仁憲이다.

인헌공파의 인물로는 조선 인조 때 우의정 세자부世子傅를 지낸 문정공文貞公 강석기姜碩期가 있다. 그의 딸이 소현세자의 빈이 되는 민회빈 강씨이다. 소현세자가 독살을 당하고 그가 사약을 받게 되자 그의 아내와 친모, 4형제가 모두 사돈인 인조에게 죽임을 당했다. 아들들 또한 제주도로 귀양 보내져 생을 마감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 총독에게 수류탄을 던진 의사 강우규도 인헌공파의 후손이다.

                                     

3. 인구

  • 2000년 966.710명
  • 2015년 진주 강씨 968.109명 + 진양 강씨 193.217명 = 1.161.326명
                                     

4. 집성촌

  • 함경남도 북청군
  • 충청남도 공주시
  • 전라북도 순창군
  • 전라남도 나주시
  • 평안북도 정주시
  • 경상북도 안동시, 영풍군
  • 경상남도 남해군, 진주시
                                     

4.1. 집성촌 제주도

제주도의 입도한 진주 강씨는 각각 1418년 태종 18년 강윤희姜允熙 공이 양녕대군의 폐위를 반대하다가 유배를 왔으며, 1436년 세종 18년에는 은둔생활을 위해 강인덕姜仁德 공이 입도를 하였고, 1506년 연산군 12년에는 갑자사화를 피해 강철姜哲 공이 입도하였다.

강윤희 姜允熙 중시조 은렬공 강민첨의 제 13세손으로, 진주에서 출생하여,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 학관을 역임하고, 이어 형조좌랑과 사헌부 대사헌을 지냈다. 대사헌으로 역임하고 있던 1418년 태종 18년, 양녕대군의 폐출에 반대하다가 제주에 유배되었다. 당시 제주목 납읍에 정착하였고, 입도 후에는 학덕을 펼쳤다. 대정 일대에 후손들이 많이 살아 대정파 혹은 창강倉姜이라 불린다.

강인덕 姜仁德 중시조 은렬공 강민첨의 제 15세손으로, 1406년 태종 6년에 출생하여, 은둔생활을 위해, 1436년 세종 18년에 제주도에 입도 하였다. 제주목 북포촌에 정착을 하여 학문에 힘썼고, 염통공악의 시조가 되었다. 그의 묘는 상여오름 남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염통처럼 생겼다고 해서, 염통뫼라고 부르던 것에서 염통악파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애월읍 어도리1993년 봉성리로 개칭에 집성촌이 있어서 어강於姜이라고도 부른다.

강철 姜哲 중시조 박사공 강계용姜啓庸의 11세손으로, 성종 중엽 한양에서 출생하여 문과에 급제하여 진용교위進勇校尉에 올랐다. 1506년 연산군 12년에 갑자사화로 재종형再從兄 대사간 강형姜詗이 화를 입자, 전라도 완산으로 피신했다가 멸문지화를 면하기 위해 제주로 입도하였다. 제주목 오라리에 정착하여 후진 교육에 힘썼다. 애월읍 물메오름, 수산봉水山峰에 묘가 있는데, 이 수산봉을 따서 수산파 혹은 수강水姜라고 한다. 입도조인 강철의 조부인 강윤이 정랑공이어서 정랑공파라고도 부른다.

                                     

5. 항렬자

  • 은열공파殷烈公派 밀직공, 학사공, 부사공, 사평공, 진사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