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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릉 두씨 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통이 있다. 시조 두경녕 杜慶寧은 고려 목종 때 우사관右司官을 지냈다. 만경 두씨 萬頃 杜氏라고도 한다. 시조 두교 ..




                                     

ⓘ 두릉 두씨

두릉 두씨 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통이 있다.

시조 두경녕 杜慶寧은 고려 목종 때 우사관右司官을 지냈다. 만경 두씨 萬頃 杜氏라고도 한다.

시조 두교림 杜橋林은 명明나라에서 기주자사冀州刺史를 지냈다. 그의 아들 두사충 杜師忠이 임진왜란 때 이여송 장군을 따라 구원군으로 조선에 들어와 수륙지주주사水陸指晝主事로 활약한 뒤 조선에 정착하였다.

                                     

1. 본관

두릉杜陵은 중국 있는 지명으로 장안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오늘날 산서성에 속해 있다.

두경녕杜慶寧을 시조로 하는 두릉 두씨는 고려와 조선시대 만경 두씨 萬頃 杜氏라고도 하였는데, 만경은 현재의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이다.

                                     

2. 두경녕杜慶寧계 만경 두씨

시조始祖 두경녕杜慶寧은 송宋 태종 때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냈다. 『두릉두씨세보杜陵杜氏世譜』에 의하면 그는 송宋 진종의 왕위 계승 문제에 관해 상소를 올려 직간하다가 진종에게 미움을 받아 소주자사蘇州刺史로 좌천되었다. 이에 아들인 중서사인中書舍人 두지건杜之建과 우습유右拾遺 두지봉杜之逢 형제를 데리고 정처 없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서 1004년목종 7 궁지현宮池縣:지금의 전라북도 김제군 만경읍에 표착하여 고려에 귀화하였다. 목종은 두경녕에게 우사관右司官의 벼슬을 내리고 궁지현을 식읍으로 하사한 후 두릉군杜陵君에 봉하였다. 궁지도는 당시 만경현萬頃縣에 속했던 섬이다. 그래서 만경 두씨 萬頃 杜氏라고도 한다.

시조 두경녕의 묘소는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 석불산에 있다.

                                     

2.1. 두경녕杜慶寧계 만경 두씨 인물

  • 두량필 杜良弼: 조선 중기의 무신. 자는 인명仁明, 호는 일송逸松이다. 병자호란 때에 인조가 청나라 군대를 피해 파천播遷함을 듣고 통곡한 뒤 병사를 모아 곧바로 남한산성南漢山城 인근으로 진격했다. 계략計略으로 적을 공격해 성과를 올렸고 후에 인조가 그 충의忠義를 가상히 여겨 도총관都摠管에 제수했다. 진무일등振武一等으로 공훈功勳이 내려졌다.
  • 두경승 杜景升,? ∼ 1197년: 고려 의종 때 공학군控鶴軍에 뽑혔다가 대정隊正이 되어 후덕전厚德殿의 견룡牽龍이 되었다.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 무인들이 남의 재물을 약탈했으나 홀로 전문殿門을 지키면서 남의 재산을 범하지 않았다. 명종 초 산원散員이 되었다가 이의방李義方의 추천으로 내순검군지유內巡檢軍指諭가 되었으며, 뒤이어 낭장郎將이 되었다. 1173년고려 명종 3 김보당金甫當이 반란을 일으키자 남로선유사南路宣諭使가 되어 인심을 수습하고 뒤이어 장군이 되었으며, 서북면병마부사가 되어 창주昌州: 지금의 평안북도 창성를 진수하였다. 이 때 서경유수 조위총趙位寵이 반란을 일으키자 개성으로 후퇴하였다가 다시 동로가발병마부사東路加發兵馬副使가 되어 고산孤山 선주宣州: 지금의 평안북도 선천 맹주孟州: 지금의 평안남도 맹산 무주撫州: 지금의 평안남도 덕천 등지에서 무공을 세운 후 개성으로 개선하였다. 다시 후군총관사後軍摠管使가 되어 연주漣州: 지금의 평안남도 개천에서 적을 크게 무찔렀다. 1176년에 윤인첨尹鱗瞻과 함께 서경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조위총을 사로잡아 죽였다. 그 뒤, 서북면병마사가 되어 영청永淸: 지금의 평안남도 평원을 진수했다. 이듬해 북로처치사北路處置使를 겸했고, 뒤이어 상장군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에 올랐다. 1180년에 공부상서, 이듬해 호부상서, 1185년에 참지정사參知政事, 1190년에 수태위守太尉가 되었다. 이듬해 판이부사判吏部事 수국사修國史가 되어 전주銓注를 맡았다. 뒤이어 평장사平章事가 되었다가 1193년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이 되었으며, 다시 감수국사監修國史를 겸하였다. 이듬해이의민李義旼과 함께 문하시중이 되었다가 1196년에 중서령中書令이 되었다. 이듬해 새로 정권을 잡은 최충헌崔忠獻에 의해 자연도紫燕島로 귀양갔다가 울분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 그러나 그가 금을 가지고 있어 그의 종이 도둑질하려고 은밀히 죽였다고도 전한다.
  • 두수총: 대도호부장군
  • 두명라: 보문각진사
  • 두명철: 평장사
  • 두방: 중서문하시랑
  • 두현: 문하시랑평장사
  • 두무지: 병마절도사


                                     

2.2. 두경녕杜慶寧계 만경 두씨 세거지

  • 전라북도 익산시
  • 전라북도 군산시
  • 전라북도 임실군
                                     

3. 두교림杜喬林계 두릉 두씨

시조 두교림 杜喬林는 명나라에서 기주자사冀州刺史를 지냈다. 자는 정덕正德이다. 두교림의 아들 두사충杜師忠이 임진왜란 때 이여송李如松 장군을 따라 구원군으로 와 수륙지주주사水陸指晝主事로 활약한 뒤 조선에 정착하여 살게 됨으로써 후손들이 두교림을 시조로하고 고향인 두릉을 본관으로 하였다.

                                     

3.1. 두교림杜喬林계 두릉 두씨 세거지

두사충杜師忠이 경상도 대구에 머물러 살았고, 두사충의 4대손 두여환杜如煥이 대구 남산에서 성주군으로 이주한 사실이 나타나 있고, 3세 두일건杜逸建은 함경도 함흥에 정착하였다.

                                     

3.2. 두교림杜喬林계 두릉 두씨 과거 급제자

두릉 두씨는 조선시대 사마시 2명을 배출하였다.

  • 두시재杜詩在, 1826년생: 사마시司馬試 고종10년1873 식년시 3등
  • 두철수杜喆秀, 1852년생: 사마시司馬試 고종22년1885 식년시 3등
                                     

4. 인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두릉 두씨는 1.741가구 총 5.701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