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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흥 김씨 는 함경남도 함흥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김염 은 조선 정종 1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경승부윤을 지냈다. ..




                                     

ⓘ 함흥 김씨

함흥 김씨 는 함경남도 함흥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김염 은 조선 정종 1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경승부윤을 지냈다.

                                     

1. 역사

시조 김염金廉은 조선 정종 1년 문과에 급제하여 경승부윤敬承府尹을 지냈다. 신라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예로 추정되나 문헌이 없으므로 선계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2. 본관

함흥은 본래 고구려의 옛 땅이었다. 고구려가 나당 연합군에 의하여 멸망한 뒤에는 당나라의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에 예속되었으며 발해가 건국한 뒤에는 발해에 속해 있었다. 그 후 고려 초까지 동여진東女眞이 점거하고 있었다. 고려 예종 2년1107년에 윤관尹瓘이 여진을 정벌하고 1108년 함주대도독부咸州大都督府를 설치하여 진동군鎭東軍이라 일컫고 성을 쌓아 남계南界의 정호丁戶 1천 9백 48호를 옮겨 채웠다가, 1109년 성을 철거하고 그 땅을 여진으로 돌려주었다. 그 후 1258년고종 45 원元나라가 침입하여 합란부哈蘭府라 하여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에 예속시켰다. 1356년공민왕 5 유인우柳仁雨는 이자춘李子春의 내응을 얻어 쌍성을 수복하고 지함주사知咸州事를 두었다가 함주 만호부咸州萬戶府로 고치고 병영을 설치하였다. 후에 공민왕 18년1369년에는 목牧으로 승격되었다. 조선 태종 16년1416년에는 함흥咸興으로 고치고 부府로 승격시켜 관찰사의 본영으로 삼았다. 세조 13년1466년에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성종 원년에 군郡으로 강등시켰으나 1473년성종 4년 다시 부로 복구시켰다. 1895년고종 32년 23부제 실시 때 함흥부咸興府가 되었다. 1896년 13도제로 개편함에 따라 함경남도 관찰사청觀察使廳을 두었으며, 1910년 도청 소재지가 되었다. 해방 이후 함흥시로 승격되었으며 1960년 10월에 함흥직할시 로 승격하였다. 그러나 1967년 10월에 함경남도 함흥시로 환원되었다.

                                     

3. 인물

함흥 김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명을 배출하였다.

  • 김기지 金驥趾: 조선 연산군 7년1501년 신유辛酉 식년시式年試 3등三等 22위로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은 군수郡守를 지냈다.
                                     

4. 인구

대한민국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함흥 김씨는 1985년에는 총 35가구 131명, 2000년에는 총 53가구 187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